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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봄의 기억, 전주 이팝나무축제에서 한옥마을까지

by 오렌지90 2025. 4. 24.

봄은 늘 우리 곁에 조용히 찾아오고, 그렇게 스며든 계절은 어느새 꽃이 된다.
꽃 중에서도, 유난히 하얗고 소박한 봄의 끝자락을 알리는 꽃이 있다.
이름도 고운 이팝나무 꽃, 흰 쌀밥처럼 가지마다 소복이 피어나는 이 꽃은 마치 누군가의 기억을 닮은 듯 조용하고 다정한 느낌을 준다.

전주 팔복동 철길길을 따라 하얗게 피어난 이팝나무길은, 봄날을 감성적으로 물들여주는 풍경으로 매년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우리는 그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이팝나무축제를 찾았고, 자연스레 발걸음은 한옥마을로 이어졌다.
그 여정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계절과 사람과 마음이 함께 걷는 특별한 하루였다.

전주 이팝나무 축제

이팝나무꽃이 흩날리는 길에서

이팝나무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벚꽃처럼 요란한 개화 소식을 전하지도 않고, 진달래처럼 선명한 색을 뽐내지도 않는다.
하지만 봄이 끝나기 전 조용히 피어나, 지나가는 이들의 마음에 묵묵히 흔적을 남기는 꽃, 그게 이팝나무다.

전주 팔복동 문화예술지구 인근, 폐선된 철길을 따라 조성된 산책길은 매년 5월이 되면 하얀 눈이 내린 듯한 풍경으로 변한다.
양 옆으로 줄지어 선 이팝나무는 키도 크고 품도 넓어, 마치 나무들이 서로를 다정히 감싸 안고 있는 듯하다.

이팝나무축제는 그 단아한 풍경 속에서 조용히 열린다.
현란한 무대 공연보다는, 산책과 쉼, 그리고 체험 중심의 따뜻한 프로그램이 주를 이룬다.

우리는 가족과 함께 이 길을 걸었다.
아이 손에는 솜사탕이 들려 있었고, 나무 아래 놓인 돗자리 위에서는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르는 청년들이 있었다.
햇살은 나뭇잎 사이로 조용히 내려앉았고, 바람은 꽃잎을 살짝 떨구었다.
그 순간이 너무 평화로워서, 아이도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엄마, 여기 하늘에서 눈 온 것 같아."
짧은 말 한마디가 하루를 다 채워주는 것 같았다.

축제 정보

기간: 2025년 5월 3일(토) ~ 5월 6일(화) 오전 10시 ~ 오후 9시

장소: 전북 전주시 덕진구 팔복예술공장 및 이팝나무 철길 일대 / 이팝나무 철길 개방

입장료: 무료

주최: 전주시​

전시 및 체험 프로그램
앙리 마티스 & 라울 뒤피 전시회: 팔복예술공장에서 열리는 미술 전시로, 가족 단위 방문객들에게 예술적 감성을 선사합니다.

전주 이팝나무 장터: 지역 중소기업 제품을 홍보·판매하는 부스로, 다양한 상품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과 공연이 준비되어 있어 가족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축제입니다.​

또한, '하얀 꽃비 속으로, 시내버스로 편리하게!'라는 슬로건 아래 대중교통 이용 캠페인도 진행됩니다.

 

한옥마을에서 다시 시간을 걷다

이팝나무길을 따라 걸음을 옮기면, 전주의 또 다른 얼굴인 한옥마을이 기다린다.
꽃이 자연의 시간이라면, 한옥은 사람의 시간이 담긴 공간이다.
그리고 그 둘이 맞닿는 곳에서 우리는 조용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한옥마을에 도착하면, 먼저 한복을 입고 거리를 걸어본다.
아이에게도 작은 한복을 입혀주니, 전통의 옷이 주는 품위와 예스러움이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어른의 눈에는 동화 같고, 아이의 눈에는 모험 같았을 것이다.

골목마다 펼쳐진 전통 공예 체험 부스에서는 한지 부채 만들기, 탁본 체험, 민화 색칠 등을 할 수 있었다.
아이도 조심스럽게 붓을 들고, 노란 꽃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며 조용히 생각했다.
‘우리는 참 잘 왔구나.’

한옥마을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돌담길을 따라 걷고, 전주비빔밥 한 그릇을 가족과 나눠 먹고, 노리개를 달아보며 웃고, 한옥의 마루에 앉아 하늘을 보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채워진다.
그건 어떤 입장권도 필요 없는 여유이자, 가족만의 평화로운 리듬을 되찾는 시간이었다.

 

봄날의 맛, 전주의 향기

전주를 여행하면서 빠질 수 없는 건 음식이다.
전주는 ‘맛의 도시’라 불릴 만큼 음식에 진심이고, 그 진심이 가족 여행자에게는 큰 선물이 된다.

전주한옥마을에서는 수많은 길거리 간식들이 관광객의 발길을 잡는다.

수제 초코파이, 달콤한 흑임자 인절미 아이스크림, 아기자기한 한과, 꼬치구이, 떡볶이, 모주까지!

하지만 아이와 함께라면 조금 더 건강하고 따뜻한 식사를 고르게 된다.
전주비빔밥, 콩나물국밥, 돌솥정식은 아이 입에도 잘 맞고, 부모에게도 위안을 준다.

식사 후에는 마을 내 작은 한옥카페에서 전통차 한 잔을 마셨다.
대추차 한 모금에 봄바람이 섞여 들어오고, 아이는 창밖을 보며 살짝 졸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참 따뜻해졌다.
이런 여유가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지, 새삼 느끼게 된다.

 

계절보다 따뜻한 기억을 안고 이팝나무꽃은 금방 진다.
며칠 사이 소리 없이 흩날려, 어느새 초록 잎으로 바뀌어버린다.
하지만 우리는 그 순간을 기억할 수 있다.
하얀 꽃잎 아래서 아이가 웃었던 순간, 한옥마을의 담장을 따라 걷던 그 감촉, 함께 먹은 따뜻한 밥 한 끼 전주는 그런 여행지다.
대단한 것이 없어도, 사람을 감동시키는 무언가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사람과 계절, 그리고 마음의 속도가 닮아 있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팝나무축제에서 시작된 우리의 하루는, 한옥마을에서 조용히 완성되었다.
그 하루는 마음 깊숙이 저장된 하얀 추억의 사진첩 한 장이 되어, 오래도록 꺼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봄, 당신도 누군가와 함께 그 길을 걸어보기를.
그 길 위에서, 당신의 이야기가 꽃처럼 피어나기를.